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 (문단 편집) === 대외 영토 및 식민지 확보 ===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해운 및 대외 식민지의 운영이었다.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은 엄연히 열강이면서도 다른 열강이나 식민제국들과는 달리 대규모 대외 식민지를 경영하지 않았다. 다만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은 오스트리아인 외에 다양한 소수민족의 비중이 높은 다문화 제국의 특성상 본국과 식민지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한 사례로 보기도 한다. 간혹 제국 내 타 영토들에 비해 이질적이었던 [[보스니아-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]]을 식민지로 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학자들에게 보스니아는 식민지로 간주되지 않는다.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중제국이 대외 확장에 아예 무관심한 건 또 아니었다. [[1858년]][* 대타협 이전이긴 하나]부터 [[안다만 니코바르 제도|니코바르 제도]]에 원정을 보내면서 식민지화 가능성을 검토했다. 하지만 [[1886년]] 원정에서 영국의 점유를 확인 후 포기했다. 1898년에는 [[미국-스페인 전쟁]]에서 패하며 대부분의 식민지를 잃어버린 스페인이 [[스페인령 사하라]]를 오스트리아-헝가리에게 매각하려고 시도하였다. 오스트리아는 해군력 증강의 명분이 될 대외 식민지 확보의 일환으로 여기에 관심을 보였으나 식민지 확보에 미온적인 헝가리의 반대로 무산되었다. 또한 [[의화단 운동]] 당시 다른 열강들과 함께 진압에 참여하여[* 이 때 오헝 제국은 [[독일 제국]]과 [[러시아 제국]] 못지않은 잔인한 보복전을 벌였다.] [[톈진 조계]]의 일부를 ([[오스트리아-헝가리령 톈진]]) 획득했다. 톈진 조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